[글마당] 내 심장을 훔쳐간
사람들은 가을이 슬프다 한다 외롭다 한다 시월 하늘 한 줌 꾹 짜면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지는 투명하고 바삭바삭한 가을이 난 좋다 여윈 햇살이 감질나 할 말 많은 푸른 이파리들 하나둘 고개 들면 찰랑대던 고추바람 붓질을 시작한다 빨강 주황 노랑 갈잎 고루고루 볼연지 발라주면 어느새 세상은 황금빛 잔치 입은 벌어지고 눈은 춤을 추고 가슴은 노래한다 출렁대던 색의 여신 제 흥에 겨워 고인 슬픔 울컥울컥 토한다 깊어진 가을 둥글게 몸 말아 푹신한 이불이 되고… 산책길에서 돌아오니 언제 왔는지 책상 위에 시가 와 앉아있다 정명숙 / 시인·롱아일랜드글마당 심장 고추바람 붓질 황금빛 잔치 시월 하늘